피라네시
피라네시 (Piranesi)
수전 클라크(Susanna Clarke)의 장편소설 (2020). 2021년 영국 여성문학상(Women's Prize for Fiction) 수상. "조너선 스트레인지와 미스터 노렐" (2004) 이후 16년 만의 장편. 2026-10-14 완독.
요점
- 무대: '집(The House)' - 끝없이 이어지는 홀과 방들, 각기 다른 조각상, 아래층을 삼키는 조수(tide)
- 화자 '피라네시'는 이 집 안의 세계를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유일한 동행은 '다른 사람(The Other)'
- 제목은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상상적 감옥 판화(Carceri)에서 온 것
- 소재: 기억과 정체성, 무한한 공간, 세계 인식의 한계
읽고 나서 (rawplug 013)
2026-10-14 아침(학교 조례 직후 1교시)에 시작해 그날 밤까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다음날 새벽에 백스페이스 없이(오타만 마지막 단어 수정) 쓴 감상 기록에서 옮긴다. 원문: rawplug "013. 피라네시(piranesi)" (https://raw.meliplug.info/posts/013-piranesi/)
읽게 된 경로
피라네시는 13일에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 읽기로 했다. 사실 추천은 아니고 친구한테 무엇을 요즘 읽고있냐고 물어서 나온 답변이 피라네시였다.
친구는 피라네시가 어... 밀도가 낮다? 공간이 좁다? 무슨 처음 들어보는 표현을 쓰면서 소설을 설명했다.
예시로 든게 중세 판타지와 백룸의 차이를 구별해보라, 생각해 보라 였는데, 잘 모르겠었다.
- 친구의 "밀도가 낮다 / 공간이 좁다"라는 표현은 읽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중세 판타지와 백룸의 차이로 설명하려던 것.
읽는 방식
난 철학 배경지식이 없어서 철학서를 읽는데 (최근에 자유로 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를 읽는데 배경 지식이 없어서 고생하고있다) 한참 걸렸다. 또 철학서를 읽는데는 문학을 읽는 것과 다르게 (문학에서는 맥락을 이해하면 구체적으로 머리속으로 그릴 수 없어도 그 상황을 이해하면 넘어가는 편) 한참 걸려서 이해를 완료하고 넘어간다.
반대로 책을 추천해준 친구는 철학서를 빠르게 읽고, 피라네시를 꼼꼼히 읽는다고 했다.
책에서 상황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한 것 때문이라고 한다.반대라서 기억에 남았다.
- 나는 문학을 맥락 위주로 빠르게 읽고, 친구는 묘사가 디테일한 피라네시를 꼼꼼히 읽는다. 정반대라서 기억에 남았다.
기록하는 화자
주인공은 모든걸 기록한다. (일지에)
난 항상 기록을 하고 싶은데 실패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핸드폰이 망가져서 (배터리가 부풀었다) 강제로 아날로그로 살고 있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공책(노트)에 이것 저것 썼다.
최근에 llm wiki를 설정해서 거기에 좀 의미? 활용? 을 하고 싶었고, 일기를 마구마구 써서 뭔가 얻어내려고 하고있다.
- 기록하는 화자에게 끌린 이유: 나도 기록을 하고 싶지만 잘 못한다. 지금 이 위키도 그 시도의 하나.
기억의 이상함
주인공은 기억하는 것이 굉장히 이상하다.
경찰은 아는데, 경찰서는 모르고, 학자는 아는데 대학은 모른다. - 아니, 교수를 아는데 대학을 모르는 거였나? 아무튼.
주인공이 아는 지식은 집에 등장하는 것들 - 즉 조각상, 혹은 바다에 있는 것, 또는 집에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목록에는 없는 총 같은 것을 알고 있기도 하다.
조각상, 집, 바다에 총이 있을 지도?
잘 모르겠다.나중에 일기를 보는데 가로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랜덤으로 잊는 것 일수도 있겠다.
주인공이 일기를 쓰는데 날짜를 쓰는 방법이 특이하다.
알바트로스에게,
아니,
알바트로스가 동쪽 현관으로 날아온 해 였나 아무튼 특이한 연도 체계를 사용하는데, 그 연도/해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해의 시작이 아니라 중간에 붙여주는 것 같다.그럼 그 전까지 연도 칸을 공백으로 두고 나중에 연도에 이름을 붙이면 후에 전부 채우는건가?
- 기억이 무작위로 빠지는 화자. 집 안의 사물은 알지만 그 바깥의 제도(경찰서, 대학)는 모른다. 연도도 사건이 생긴 뒤에 이름을 붙인다.
감상에 대하여
나는 책을 읽을때 무슨 감상을 안하고 자꾸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만 보는 것 같다.
그러기 싫은가?
아니.
그렇지만 감상을 하고싶고, 감성적으로도 보고 싶다.마음 속으로는 그러고 있는데, 그게 말로는 안나오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때 숨겨진 의도, 숨겨진 비유 같은걸 찾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걸 버렸다.
그 이후에 이렇게 된건지, 원래 이랬는데 감성적으로 책을 읽기 위해 숨겨진걸 찾는 강박이 생겨버린건지 잘 모르겠다.오랜만에 해볼까.
피라네시에 숨겨진, 그런 의도, 비유, 의미가 뭘까.
주인공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점차 그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 숨겨진 의도 찾기를 버린 뒤라, 오랜만에 그 눈으로 피라네시를 본 기록.
집, 나머지 사람, 정체성
그러고 보니, 주인공은 중간에 집에게 계시를 받고 과학적 탐구를 중단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나머지 사람에게 이 뜻을 전하는데, 나머지 사람은 이에 반대하고 주인공이 계속 탐구를, 발견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왜?
책을 대충 읽어서 모르는건가?
그럴지도.
주인공에게 타인은 나머지 사람 뿐이었다.
나머지 사람은 부모였을까?
부모였다면 과보호 하는 부모를 상징했을까?
그 당시 주인공은 아기였을까?16은? 예언자는?
잘 모르겠다.
부모의 과보호로부터 벗어난 주인공은 세계가 사악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실로 돌아가서 (피라네시에게는 이세계, 기억을 잃기 전의 주인공 -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 에게는 현실)는 자신을 피라네시도, 기억을 잃기 전의 주인공도 아닌 새로운 누군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한 것도 흥미로웠다.
- '나머지 사람'을 과보호하는 부모로 읽었고, 결말에서 주인공이 어느 쪽 정체성도 아닌 새로운 자신으로 서는 점이 흥미로웠다.
바벨의 도서관과의 유사
바벨의 도서관과 참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주제, 그러니까 무한한 공간에 던져진 작디 작은 인간도 그렇긴 한데
(피라네시의 주제가 그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주제가 아니라 제제구나)그 공간에 던져진 인간의 기록, 일기, 회상 같은걸로 그 공간을 묘사하면서 신비함을 유지하는 점도 비슷하다.
또 자주 들었던 생각은 바다가 항상 있다면 건물 페인트로 오염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같은 것도 있다.
- 바벨의 도서관과의 유사: 무한한 공간에 던져진 작은 인간, 그리고 그 공간을 기록/회상으로 묘사해 신비를 유지하는 방식.
왜 같이 묶이는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무한한 도서관/공간, 가짜 세계, 기억 테마를 공유해 보르헤스 계보로 자주 함께 읽힘
- 픽션들 - 같은 계보의 단편집
출처
- 등록: 나 (2026-10-14, 관심사로 저장)
- 완독: 나 (2026-10-14, 아침에 시작해 밤에 하루 만에 완독)
- 감상: 나, rawplug "013. 피라네시(piranesi)" (2026-10-15)
- 기본 사실: en.wikipedia "Piranesi (novel)" (2026-10-14 조회)